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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0월 28일
장면1. 2007년 족자카르타. 집 근처 파랑트리티스 거리에 있는 카페, 저녁이면 언제나 칠십은 넘어보이는 백인 노인들이 스무살도 되어보이지 않는 인도네시아 여자아이를 끼고 멍청한 대화를 나누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혹은 백인 남자들이 떼거리로 앉아있고 그들에게 접근해 인도네시아 특유의 액센트가 강한 영어로 마실 것을 사달라고 조르는 여자들이 있다. 그저께 인터넷 카페에 갔을 땐 한 인도네시아 여자가 서투른 영어로 통화를 하고 있었다. 대화 내용을 듣고 있자니 상대방은 분명 서구 출신의 남자고 인도네시아로 휴가를 올 계획을 가지고 있는 모양이다. 둘은 인터넷을 통해 알게 된 것이 분명했고 여자는 어떻게 해서든 남자를 발리가 아닌 이곳으로 불러들이려 안달하고 있었다. 나는 저 목소리를 기억한다. 작년에 내가 이곳에 왔을 때도 그녀는 같은 자리에 앉아 누군가와 비슷한 대화를 하고 있었다.
남한의 경계를 벗어나는 순간 어느 국가 출신이건, 경제력을 가지고 있건 말건, 고등교육을 받았건 말건, ‘Broken English’가 아니라 ‘Good English’를 구사할 수 있건 말건 나는 그저 일개 아시안 걸이다. ‘아시안 걸’이 표상하는 것, 이국적인 매력, 섹스, 순종적인 태도.... 또 무엇이 있을까. 아시아에 대해 조금이나마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중동아시아, 동아시아와 동남아시아의 차이 정도를 구분해낼지 모르겠지만 어쨌건 아시아는 ‘아시아’일 뿐이다. 유럽의 발명한 것 중 가장 성공적으로 개념화된 것 중 하나가 바로 ‘아시아’라는 모리스 스즈키의 말이 옳다. 참으로 이상하게도 ‘아시아’라는 개념의 기원은 아시아가 아니라 서구로부터다. 그리고 광대한 아시아 지역의 모든 차이는 ‘아시아’라는 단어 속에서 녹아버린다. 나는 이 아시아를 바라보는 시선 앞에서 분열한다. 아시안걸은 영어를 못할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앞에서 (실제로 대부분의 동아시아인-일본인과 중국인, 한국인은 영어를 구사하지 못하기 때문에 족자카르타의 외국인 커뮤니티에서 배제된다. 하지만 문제는 영어 때문만이라고는 할 수 없다. 밖에 나갈 때면 꼭 양산을 들고 다니는 중국 여자아이를 보면서, 나는 동아시아인의 저 태도가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들과 ‘다르다’고 증명하지 못해 안달하면서, 나를 일본사람이라고 불러대는 동네 꼬마들 앞에서 매번 일본 사람 아니라고 말해야 하는 건지 말아야 하는 건지 고민하면서, 인도네시아어를 할 수 있음에도 특정 장소에서는 차라리 영어를 쓰는 것이 대접받는 것임을 확인하면서, 내셔널리티가 그리고 아시안걸이라는 정체성이 이곳에서 나를 얼마나 구속하고 있는가를 확인하면서.
장면2. 2003년 방콕, 대중교통수단인 BTS를 타고 어딘가로 향하고 있을 때 내 귀에 익숙한 한국말이 들려왔다. 30대 중반 쯤의 한국 남자 두 명이 내 옆자리와 맞은 편에 앉았다. 그들의 대화 주제는 태국에서의 ‘불타는’ 밤과 자신들에게 ‘매달리는’ 태국 여자들에서 그치지 않고 옆자리에 앉은 내 외모에 대한 평가로 넘어왔다. 그들은 필시 (검게 탄 채 태국풍의 스카프를 걸친) 나를 태국인으로 생각한 모양이었다. 급기야 ‘맛있어 보인다’라는 표현까지 튀어나왔을 때 나는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내가 화를 참지 못해 울그락 불그락 하자 그들은 “어쭈, 얼굴이 빨개지는 걸 보니 알아듣나 보네” 라며 낄낄거렸다. 결국 나는 벌떡 일어섰고 ‘유창한’ 한국어로 그들에게 소리소리를 질러댔다. 하얗게 질렸을 그들의 얼굴을 보며 비웃어주고 싶었지만 나는 그냥 뒤돌아서 다음 칸으로 건너와버렸다. 여전히 나는 태국 여성으로 오인되는 순간 받아야했던 저열한 모욕을 생생하게 기억한다.
한편 나는 또 기억한다. 필리핀에서 몇개월의 어학연수를 마치고 돌아온 한국 남자아이가 필리핀 여자아이들이 외국남자에게 알랑거리는 것은 그들의 '자유의지'일 따름이라고 말했던 것을. 결국 그와 나는 그 대화에서 어떤 접점도 찾을 수 없었다. 또 한편으로 자카르타에서 만난 필리피노 아메리칸 남자아이와 나누었던 대화를. 그는 자신을 여전히 '동남아시아 남성'으로 정체화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동남아시아와 동아시아가 관계 맺는 방식에 대해 끝도 없이 많은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나는 대부분의 한국남성과 이 주제의 대화를 나누는 것을 포기했다.) 자신을 어떻게 정체화하고 있는가가 많은 것을 결정한다. 그렇다면 글로벌화되어가고 있는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수많은 아시아인들과 부대끼며 살아야만하는 이 현실에서 한국인은 자신을 도대체 무엇으로 정체화하고 있는가. 진심으로 궁금하면서 또한 그것을 아는 것이 두렵다.
장면 3. 2002년 서울. 동북아시아 영화사 시간. 일본해군성이 태평양 전쟁 중에 제작한 애니매이션, 모모타로는 일본의 태평양전쟁을 이렇게 상징화한다. 원숭이 모모타로가 다른 원숭이들(한국인, 중국인)과 힘을 합쳐 정글에 사는 온갖 짐승들(동남아시아인)을 서양마귀(유럽 제국주의자)들로부터 해방시킨다. 원숭이들은 짐승들에게 글을 가르치고 집을 지어준다. 원숭이들은 마귀일지언정 인간의 형상을 하고 있는 서양마귀들로부터 짐승들을 해방'시켜'준다. 많은 동남아시아 사학자들은, 태평양 전쟁 당시 일본이 동남아시아에서 승승장구한 것이 놀라운 일이 아니라 서구제국주의가 그토록 오래 동남아시아에서 식민정부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이 더더욱 놀라운 일이라고 지적한다. 아이러니하게도 많은 연구들은 동남아시아가 독립에 대한 열망을 인식하는 계기는 일본점령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영원할 것처럼 보였던 서구 식민지배가 그토록 순식간에 다름아닌 '아시아' 국가 군대에 의해 무너지는 것을 경험한 것이 바로 그 시발점이라는 것이다. 어쩌면 맞는 이야기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일본의 근현대사를 관통하는 脫亞立邱의 욕망이 아시아를 어떻게 위계화하며 작동했는가를 생각해보자면 이야기는 그다지 단순하지 않다. 그것은 '자신보다 열등하다고 믿는 무엇을 자신의 아래에 배치하고 그것을 발판으로 자신의 열등감을 극복하려는 시도'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동남아시아에 머물면서 내가 보게 되는 것은 남한 사회가 새로운 주체-아시아 출신 이주민의 유입에 맞서 지독한 인종주의 사회로 재편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불안의 현실화다. 이 불안과 적대 속에서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그것이 아마도 내가 지금, 여기 있는 이유일 게다. | |||||